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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어요

| Manmin News No. | 1999-07-04


지금 으로부터 15년 전, 막내아들 현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피혁공장을 경영하던 남편이 사업 실패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고혈압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이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빠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여 마음을 강하게 먹고,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신길동 영진시장내 노점에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반찬 장사를 하며 외롭고도 버거운 삶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그러던 중, 제가 50세 되던 해인 1989년, 저는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고자 스스로 교회를 찾게 되었고, 1992년 3월에는 친정어머니 이광조 집사님의 인도로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교회 등록 후,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부터 쌓였던 생활고가 해결되지 않아 힘겨운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6년 4월 8일, 일을 마친 후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교회로 향하여 막 성전 계단을 오르던 참이었습니다.
"앗!"
갑자기 목덜미 부분이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예리한 통증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왔고 순간 머리는 어질어질해졌습니다. 그리고 속이 마구 울렁거려 옆에 계시던 분이 갖다 준 비닐봉지에다 구토를 한 후 택시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주위에서는 "저녁 먹은 게 체한 것 같다"고들 하였지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곧바로 방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놀란 막내아들 현태가 "어머니, 왜 그러세요?" 하고 저를 흔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뇌동맥이 파열되어 소생할 가망이 없습니다"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동안에도 현태는 저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의식을 잃은 제가 온 방안을 뒹굴면서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제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고통을 호소하자, 현태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다음 날인 4월 9일 새벽 무렵에야 황급히 119 구급차를 불러 집 근처 보라매 병원으로 저를 옮겼다고 합니다.
저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정밀검사를 실시한 담당 의사가 "뇌 속에 있는 동맥이 파열되어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현태는 "의사 선생님! 저희 어머니를 어떻게든 살려 주세요!"하고 발을 동동구르며 애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측의 권유로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00명 중에 혹 한 사람이 살아난다 해도 평생 식물인간으로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환자나 보호자를 위해서도 그냥 편안히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어떻게든 저를 살려 보려고 다시 보라매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와 수술이라도 한 번 해 보고 포기하겠다고 울며 불며 끝까지 매달렸다고 합니다. 결국 수술 결과에 대해서는 병원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나서야 장장 10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4월 12일, 담당 의사는 예상했던 대로라며 "장례를 준비하십시오. 이제 산소 호흡기만 떼어 내면 호흡이 끊어집니다."라는 통보를 하였고, 이제 두 아들은 한 가닥의 희망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당회장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나 친정어머니인 이광조 집사님과 여동생인 주남이 집사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등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고 체험해 왔던터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믿고 맡기면 능히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현조야, 이제 더이상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지하기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단다. 당회장님께 믿음으로 기도받도록 하자."
그 때 두 아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후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그 때 당회장 목사님께서는 옆에 있던 여동생 주남이 집사에게 "언니가 평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가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마침내 1996년 4월 13일 새벽, 금요철야예배를 마치시고 중환자실로 찾아오신 당회장님께서는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회장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나가실 때에 놀랍게도 제가 손으로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고 한 쪽 눈을 슬며시 뜨더라는 것입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로 바람앞의 촛불처럼 꺼져가던 한 생명이 소생하는 순간이었지요. 할렐루야!

"이건 분명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 주신 후 병세는 급속히 호전되어 4월 19일 오후 2시경, 저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일어나 앉더니 왜 내가 여기 있냐고 묻더랍니다.
이렇게 되자 저에 대해 더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병원측에서는 다시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996년 5월 22일, 저는 입원한 지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쾌되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담당 의사는 "주순희씨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라고 인정하였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저는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많은 신경을 쓴 탓에 뇌동맥이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를 즐거워하고, 당장 먹을 쌀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예물드리기를 기뻐하고, 어려운 구역 식구들에게 김치도 담궈다 주며, 기도하고 전도하기를 힘썼던 제 모습을 기뻐받으신 하나님께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치료해 주셨고, 이를 계기로 온 가족이 참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큰아들 현조에게 놀라운 물질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강서구 등촌동에서 수입식품 가공업을 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불경기에도 주문이 넘쳐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물질로 공궤하는 큰아들을 축복하셔서 사업터가 날로 번창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이지요.
치료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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