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신종질환 [공해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 Manmin News No. | 2006-10-25
1980년, 군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 저는 제대 후에는 술과 담배를 끊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선악과를 두신 이유' 등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거나 피부로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병마가 찾아들어
비교적 안정된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된 저는 결혼 후, 새벽 3-4시까지 계속되는 과중한 업무로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무처인 경제기획원 (현, 재정경제부)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며 밤늦게 들어오는 등 교회는 아예 나가지 않게 되었지요.
그러던 1991년 7월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감기 증상이 나타나고 다음 날은 40도에 가까운 고열까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 내가 왜 이러는 것이지?"
곧바로 입원하여 1주일 동안 종합 진찰을 받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유명 종합병원에서조차 병명을 알 수 없었고, 급기야 1996년 10월 경에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잠은 하루에 단 5분 이상도 자지 못해 72kg이었던 체중이 20kg 이상 빠져 그야말로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하다가
게다가 건강 악화로 인해 불안정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저는'96,'97년 두 번의 병가와 개인 휴가, 휴직계를 내며 거의 1년 동안 집에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투병 생활 동안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아내와 자녀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아내는 새벽 기도에 나가 제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해 주었고, 제가 휴직해 있을 때는 보험회사 설계사와 가정학습지 방문 교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저와 자녀들을 부양하였으며, 수 년 동안 일일이 제 수발을 들어 주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투병 생활에 지친 저는 삶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수없이 들었지만, 아내와 두 아이가 위로할 때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다시 마음을 추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96년 11월 어느 날,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말 자살 밖에는 아무 방법도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순간 "여보, 우리 이제라도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병을 고쳐 주시라고 매달려 봐요" 하며 항상 권유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더니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참으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만이라도 주시면 교회에 나가 믿음으로 치료받겠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 순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낱낱이 떠오르며 걷잡을 수 없는 통회자복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얼굴은 한 시간 동안 온통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통회자복을 한 후 즉시 하나님께서는 6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병명을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원인 모를 질병이 [공해병]으로 밝혀지고
아내 친구인 이병순 집사님을 통해 알게 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P 병원을 찾으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공기 중의 공해성분이 사람의 뇌, 척추 신경으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척추 신경 장애를 일으키는 신종 질환인 공해병입니다.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이 병이 발전하면 전신마비, 과로사, 심장마비 등을 유발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통회자복한 일을 계기로 저는 다시 집 근처 교회를 다니며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자 노력하게 되었고, 제 병명을 확실하게 알게 된 이상 뭔가 돌파구를 찾을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의문들 때문인지 선뜻 믿음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신앙서적을 읽게 되었으나 그 후에도 저의 궁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구입하여
그 후 약 2개월이 지났을 때, 종로서적에 들러 신앙서적 코너를 둘러보던 순간 제 시선을 끄는 간증수기 한 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달 전 우연히 본교회 선교지인 [만민중앙소식]지를 통해 알게 되었던 이재록 목사님의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였습니다.
저는 간증집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되었는데 "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군요!"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인 [십자가의 도]를 구입하여 첫 번째 테이프를 듣는 순간 그 동안 성경에 대하여 궁금해 하던 모든 것들이 명쾌하게 풀려 나갔습니다.
그러던 1997년 5월,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부흥성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성전에 들어선 순간 '여기가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성회 기간 동안 저는 매일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매시간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렸는데 설교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하는 강한 회의가 들며 지나온 삶에 대한 통회의 눈물이 매시간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니
1997년 6월 22일, 그 동안 이재록 목사님과 만민중앙교회에 대한 신뢰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간절히 기도해 온 저는 온 가족이 함께 본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치료받기 위해 저는 약을 끊었지만 그 날 저녁부터 마치 큰 바위로 짓누르고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거의 매일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저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교회에 나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기도를 하면 통증이 사라졌고 다시 전신에 고통이 찾아오면 또 한 시간 정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검사 결과 완전 정상입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낸 저는 작년 7월 18일에 30여 가지의 혈액 검사를 포함한 정밀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단 결과를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니, 이럴 수가! 전 항목에서 완전 정상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은 기적과 다름없다며 매우 놀라워하셨습니다.
공해병을 깨끗이 치료받은 저는 1997년 10월 1일 건강한 모습으로 근무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다시 근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십일조가 불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수 년 동안 축농증을 앓아 오던 큰 아이 종석이는 작년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하여 기도하던 중 축농증을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참믿음을 갖게 하시고 놀라우신 능력으로 공해병을 치료해 주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귀한 말씀을 통해 믿음의 길로 인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