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DN

sitemap

고가 사다리차가 뒤집혀 추락하는 순간, 제 몸을 받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 Manmin News No. | 2007-03-03


지난 1998년 말, 매스컴에서 잇달아 보도한 조계사 사태 진압 도중 발생한 경찰 특공대원 추락사고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경찰 특공대원들이 조계종 총무원 옥상으로 진입하던 중 15미터 아래로 잇따라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나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시위 진압 작전 중 15미터 아래로 추락했으나

1998년 12월 23일 오전 7시, 저는 조계종 총무원을 점거중인 정화개혁 회의측 승려들에 대한 법원의 퇴거 명령 강제 집행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 명령을 받고 조계사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승려들이 유리병과 화염병, 깨진 유리조각, 시너와 석유통을 마구 던지며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조계사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게다가 30여 명의 승려들은 할복조와 분신조로 나누어 경찰의 진입을 막고 있어서 사태는 극도로 심각해졌습니다.
마침내 오전 10시경, 경찰은 사태 수습을 위해 최루액 물대포 2대를 앞세우고 기동대원 30여 명을 청사 1층 현관을 통해 들여보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특공대원들은 3대의 고가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4층, 5층, 옥상으로 각각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저는 특공대 팀장으로서 솔선수범해야겠다는 생각에 부하대원들과 함께 고가 사다리차에 올랐습니다. 당시 상황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화염병, 돌멩이, 각목들로 인해 대원들의 안전이 극도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만약 격분한 승려들이 건물에 걸쳐 놓은 고가 사다리에 시너라도 붓고 불을 지른다면 많은 대원들이 꼼짝없이 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이미 진입이 결정된 상황이라 저는 부하대원들과 함께 고가 사다리차를 타고 건물 옥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계사 5층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이게 웬일입니까? 조계사가 오래된 건물이었던 터라 사다리를 받치고 있던 난간의 지지대가 갑자기 부러져 고가 사다리차가 뒤집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순간 저와 함께 대원들은 포크레인이 흙을 아래로 쏟아 붓듯이 순식간에 15미터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곤봉, 방패 등과 함께 저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 죽는구나.' 혹은 '크게 다치겠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리라.'는 믿음이 왔습니다. "쿵!" 하고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저는 헬멧이 깨어질 정도의 충격으로 인해 잠시 정신이 혼미하였습니다. 몸을 추스리고 옆을 보니 조계사 건물에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격렬히 저항하는 승려들이 던지는 위험물들은 여전히 비 오듯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추락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대원들이 저를 부축하러 달려왔습니다. "전 경위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으니 다른 대원들을 살펴봐!" 같이 떨어진 다른 대원들은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거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제 자신이 어떻게 되었나 하는 것보다는 부하대원들이 더 염려가 되었습니다. 몹시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이 결렸지만 간신히 몸을 추스린 후 즉시 사고 현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곧이어 앰뷸런스가 도착하여 부하대원들과 함께 가락동 경찰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시간의 검사 끝에 믿어지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생명이 위태롭거나 장애자가 될 정도로 중상을 입었으나, 저만은 아무런 이상이 없어 의사는 경과를 지켜보자고 할 뿐이었습니다.

"조계사 5층에서 떨어진 사람 맞습니까?"

담당 의사는 의아해하며 "조계사 5층에서 떨어진 사람 맞습니까?" 하고 몇 번이나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친 데가 없는 제 몸을 살피면서 추락할 때 받은 느낌이 분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만일 다리가 먼저 떨어졌다면 척추를 비롯한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쓰고 있던 헬멧의 측면부터 땅에 닿도록 몸을 틀어 주셨고, 또 떨어질 당시 커다란 손이 제 몸을 살포시 받쳐 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5층 높이에서 떨어진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고 당일 오후 5시경, 곧바로 저는 응급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잠을 자기 위해 눕는 순간 온몸이 뻐근하며 통증이 왔습니다. 다음 날, 제가 출석하고 있는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음성전화 사서함 환자기도]를 받으면 낫겠다는 믿음이 와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환자기도를 받으니 곧 통증이 사라졌고 입원한 지 9일 만에 정상의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만민중앙교회를 알고 참믿음을 갖기까지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지키심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경남 함양군 덕유산 아래 조그만 촌가의 유교 집안에서 2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했던 제 유년 시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가출을 하기도 하는 등 방황의 나날을 보내며 심한 좌절감 속에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모든 것을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 후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서울생활은 참으로 힘들었지만, 굳은 각오로 낮에는 공사장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1987년 4월, 친구의 권유로 경찰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경찰 임용교육을 받던 중 사격, 체력, 의협심 등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된 경찰 특공대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직이 적성에 맞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습니다. 1989년 가을, 아내 이선복 집사를 만난 후 제 삶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인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에서 생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야간열차 안에서 마주보고 앉게 된 40대 초반의 남자가 성경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본 그분에게 신앙에 관한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지요. 그 후 호기심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였고 참다운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1992년 3월, 결혼을 하면서 차츰 생활이 안정되었고, 아들 현진이를 낳은 후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서 부부의 권유로 만민중앙교회를 알게 되었고, 그분들이 전해 준 이재록 목사님 간증수기인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와 「십자가의 도」 설교 테이프 등을 통해 은혜를 받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고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당회장님의 생명력 넘치는 설교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경찰 간부에게만 특전이 주어지는 미국 FBI(미 연방수사국)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와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사기도 했고, 그 해 9월에는 경사 승진시험에 수석 합격이라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시험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해 전혀 합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재록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공부 잘하는 비결」테이프를 듣고 마음에 양식삼아 그대로 순종하여 공부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초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한 저는 비로소 1993년 11월 21일 만민중앙교회에 정식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가 원하는 부서에 발령받게 되는 등 가정과 일터에 축복이 넘쳐나니 하루하루의 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면서 믿음을 키워 나갔고, 바쁠 때에는 차 안에서 땀을 흘리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장내 기독 신우회에도 가입하여 본교회 경찰 선교회의 주관으로 방문예배도 드리는 등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경찰서장 표창을 받았으나

그러던 중 근무 부서에서 그간의 공로가 인정되어 자신이 원하는 부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높은 강남 지역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저는 교회에서 가까운 남부경찰서에 지원했습니다. 구로구에 위치한 가리봉 오거리 부근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보니 유흥가를 맴돌며 하루하루 희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지난날 방황하던 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들을 처벌하기보다는 [만민중앙소식]지를 나눠 주며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강력범을 검거한 공로로 세 번이나 경찰서장 표창을 받기도 했지요. 이 모든 것은 제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 마음 중심과 작은 선행을 기뻐하셔서 축복으로 갚아 주신 것입니다.

승진시험을 앞두고 하나님을 멀리하였더니

그런데 1998년 8월에 경찰 특공대 경위 승진시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쁜 업무로 인해 시험 준비를 못하게 되자 저는 온전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고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매일 기도하던 것도 차츰 하루, 이틀 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경위 승진시험에 합격하여 경찰 특공대 팀장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지만 여전히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모두 제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이나 기도에 대한 회의마저 들어 '죄만 짓지 않으면 되지 금욕주의자처럼 살 필요가 있으랴' 싶어 가끔 회식자리 등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지요. 또한 월급을 쪼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 나가는 아내에게 살림을 제대로 못한다며 툭하면 짜증을 부렸고, 나중에는 아예 예금 통장까지 제가 직접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행복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주일 대예배만 간신히 출석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빗나가고 있는 저를 바로잡아 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권면해 주셨지만 저는 속으로 그분들을 향해 이렇게 되뇌일 뿐이었습니다. '제 삶은 제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아내는 점점 어그러진 길로 가는 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웃는 낯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혼 때부터 강한 제 성격 때문에 마음 졸이며 살았고, 때론 술을 마시고 아무리 주정을 부려도 다음 날 아침이면 꿀물을 타 주고 해장국을 끓여 줄 정도로 심성이 고운 아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수직에 근무하는 저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또한 제가 참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쉼없이 기도를 하였는데, 사고 발생 3일 전까지 저를 위해 아들 현진이와 함께 28일 작정 철야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죄를 깨닫고 통회자복

사고가 나기 이틀 전, 동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제 신앙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감정을 건드리면 이내 폭발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권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과 사정을 하나님께 대신 아뢰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 곤고해하는 모습, 기도의 힘이 주어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 등을 저를 대신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제 마음이 되어 간절히 기도해 주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굳어졌던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제가 간식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기도 중간에 봇물이 터지듯 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건만 교만하여 잊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 이어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통회자복을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는데, 제 평생 그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습니다.

참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모든 것을 미리 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 온 아내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28일 철야기도를 드리게 하시고, 그 중보기도를 통해 사고 전에 도울 분들을 보내 주셔서 통회자복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통회자복을 통해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니 사랑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불의의 사고로부터 저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구원의 축복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코끝을 찡하게 했던 일곱 살 난 아들 현진이의 말을 제 신앙의 고백으로 드립니다. "아빠를 살려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to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