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오락 중독과 공황장애에서 벗어나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
| Manmin News No. | 2008-05-04
양 태 승 성도 (광주만민교회)
1995년, 스물다섯 살에 나는 다단계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충격으로 공황장애(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 상태가 나타나는 장애)를 앓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호흡이 가빴다. 혀가 꼬이고 입술은 바짝 바짝 마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신경정신과에서 지은 약을 먹은 뒤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늘 불안감에 휩싸여 살던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폐품 수집을 시작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폐품과 고물을 수집한 수입은 제법 짭짤했다. 그 재미에 나와 아내(배영숙 성도)는 밤낮없이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고물상을 차려 큰 돈을 모으면서 핑크빛 미래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성인오락으로 인해 망가진 삶, 정신 병원까지
2002년 초여름,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내게 찾아왔다. 당시 한창 유행이던 성인오락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원래 술, 담배, 도박과 여자를 좋아하던 나는 주머니에 돈까지 두둑하자 향락에 깊이 빠져 들었다.
돈을 버는 대로 발걸음은 성인오락실로 향했다. 따는 날보다 잃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아내 패물을 몰래 팔고, 심지어 아들 돼지 저금통을 털어 게임비로 썼다. 주변 사람들한테 돈을 빌리고 고리 사채까지 얻었지만 탕진했다.
"돈 어디다 숨겼어? 빨리 내놔! 빨리!"
"숨기긴 어디다 숨겨? 이젠 진짜 없어!"
돈을 몽땅 잃고 나면 분풀이로 아내를 폭행하고, 또 다시 성인오락을 하기 위해 칼까지 들이대며 어떻게든 돈을 타냈다. 그리고 돈을 따는 날이면 술집에서 지냈다. 세상을 방황하는 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다시는 성인오락실에 안 가겠다고 수없이 다짐해 보지만 인력으로는 안 됐다. 말려도 보고 갖은 애를 써도 소용이 없자 아내는 할 수 없이 나를 여섯 차례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다.
사랑의 간구는 삶의 용기와 변화를 가져오고
2005년 봄, 평소 가깝게 지내던 곽부녀 집사님이 만민교회를 소개하며 전도했다. 하나님의 권능과 치료 역사가 나타난다기에 광주만민교회에 따라나섰다. 약에 의존해 공황장애를 이기며 사는 것이 항상 불안하던 터였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술, 담배를 하며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나도 믿음으로 치료받겠다며 약을 끊었다가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다시 복용했다. 결국 힘을 잃은 나는 교회를 등지게 됐다.
내가 다시 광주만민교회를 찾은 것은 2007년 9월이다. 곽부녀 집사님이 1년 반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한 것을 안 것이다. 금요철야 예배 때 '요한계시록 강해'가 진행 중이었다. 마지막 때에 대해 소상히 알려 주는데 '나처럼 살다가는 지옥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박형렬 담임목사님과 일꾼들은 매일 찾아 와 나를 위해 한 달 동안 작정하여 기도해 주었다. 새 삶을 열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십자가의 도' 등 당회장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성서 대학을 수강하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다. 어느덧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송이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그러나 참 믿음은 내 의지로, 내 생각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짝하며 성인오락실에 출입하고 술, 담배를 끊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발걸음은 성인오락실로 향했다. 이런 모습을 본 아내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제 마음잡았나 했는데 또 성인오락실이라니 말이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우리, 하나님 잘 믿어 봐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아내 말이 나를 감동케 했다. 술, 담배와 오락을 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당회장님께 기도받기 위해 준비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눈물로 회개했다. 지었던 죄를 하나하나 떠올리니 지난날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2007년 12월, 서울에 올라온 나는 당회장님을 가까이서 처음 뵈었는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았다. 그 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성인오락실도 안 갔다.
거듭난 삶에 찾아 온 행복
고물상 수입이 꽤 괜찮은 날이었다. 호주머니에 돈이 두둑하자 순간, '성인오락실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틈탔다.
'안 돼! 당회장님께 기도까지 받았는데 그럴 수는 없어. 아주 끊어 버려야 해.'
"오늘 오전 11시경, 광주광역시 금호동 성인오락실에 화재가 발생해 손님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바로 화재가 난 곳은 내가 늘 다니던 단골 오락실이었고, 바로 그날이 가고 싶은 충동을 이긴 날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다는 확신으로 오니 내게는 믿음이 되었고, 나는 하나님 사랑에 감사했다.
"아빠! 입에서 담배 냄새 안 나니까 너무 좋아!"
내가 술, 담배를 끊자 예전에는 내 옆에 가까이 오지 않던 아들 동선이가 요즘에는 자꾸 내 품에 와 안긴다. 나 때문에 늘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온 아내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 나를 업고 다니고 싶다는 아내, 얼마나 좋으면 그런 말을 다할까. 그동안 나로 인해 고생한 가족에게 기쁨과 행복만 안겨주고 싶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당회장님의 음성전화사서함 3분 설교를 들은 뒤 환자기도를 받는다. 매일 저녁, 나와 아내, 아들 세 식구가 함께 다니엘 철야 기도회에 가는 것이 내 삶의 낙이다. 토요일이면 성전을 청소하며 새사람이 된 기쁨을 만끽한다.
13년 된 공황장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치료됐고 대인공포증도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간증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한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1995년, 스물다섯 살에 나는 다단계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충격으로 공황장애(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 상태가 나타나는 장애)를 앓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호흡이 가빴다. 혀가 꼬이고 입술은 바짝 바짝 마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신경정신과에서 지은 약을 먹은 뒤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늘 불안감에 휩싸여 살던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폐품 수집을 시작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폐품과 고물을 수집한 수입은 제법 짭짤했다. 그 재미에 나와 아내(배영숙 성도)는 밤낮없이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고물상을 차려 큰 돈을 모으면서 핑크빛 미래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성인오락으로 인해 망가진 삶, 정신 병원까지
2002년 초여름,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내게 찾아왔다. 당시 한창 유행이던 성인오락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원래 술, 담배, 도박과 여자를 좋아하던 나는 주머니에 돈까지 두둑하자 향락에 깊이 빠져 들었다.
돈을 버는 대로 발걸음은 성인오락실로 향했다. 따는 날보다 잃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아내 패물을 몰래 팔고, 심지어 아들 돼지 저금통을 털어 게임비로 썼다. 주변 사람들한테 돈을 빌리고 고리 사채까지 얻었지만 탕진했다.
"돈 어디다 숨겼어? 빨리 내놔! 빨리!"
"숨기긴 어디다 숨겨? 이젠 진짜 없어!"
돈을 몽땅 잃고 나면 분풀이로 아내를 폭행하고, 또 다시 성인오락을 하기 위해 칼까지 들이대며 어떻게든 돈을 타냈다. 그리고 돈을 따는 날이면 술집에서 지냈다. 세상을 방황하는 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다시는 성인오락실에 안 가겠다고 수없이 다짐해 보지만 인력으로는 안 됐다. 말려도 보고 갖은 애를 써도 소용이 없자 아내는 할 수 없이 나를 여섯 차례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다.
사랑의 간구는 삶의 용기와 변화를 가져오고
2005년 봄, 평소 가깝게 지내던 곽부녀 집사님이 만민교회를 소개하며 전도했다. 하나님의 권능과 치료 역사가 나타난다기에 광주만민교회에 따라나섰다. 약에 의존해 공황장애를 이기며 사는 것이 항상 불안하던 터였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술, 담배를 하며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나도 믿음으로 치료받겠다며 약을 끊었다가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다시 복용했다. 결국 힘을 잃은 나는 교회를 등지게 됐다.
내가 다시 광주만민교회를 찾은 것은 2007년 9월이다. 곽부녀 집사님이 1년 반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한 것을 안 것이다. 금요철야 예배 때 '요한계시록 강해'가 진행 중이었다. 마지막 때에 대해 소상히 알려 주는데 '나처럼 살다가는 지옥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박형렬 담임목사님과 일꾼들은 매일 찾아 와 나를 위해 한 달 동안 작정하여 기도해 주었다. 새 삶을 열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십자가의 도' 등 당회장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성서 대학을 수강하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다. 어느덧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송이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그러나 참 믿음은 내 의지로, 내 생각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짝하며 성인오락실에 출입하고 술, 담배를 끊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발걸음은 성인오락실로 향했다. 이런 모습을 본 아내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제 마음잡았나 했는데 또 성인오락실이라니 말이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우리, 하나님 잘 믿어 봐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아내 말이 나를 감동케 했다. 술, 담배와 오락을 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당회장님께 기도받기 위해 준비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눈물로 회개했다. 지었던 죄를 하나하나 떠올리니 지난날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2007년 12월, 서울에 올라온 나는 당회장님을 가까이서 처음 뵈었는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았다. 그 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성인오락실도 안 갔다.
거듭난 삶에 찾아 온 행복
고물상 수입이 꽤 괜찮은 날이었다. 호주머니에 돈이 두둑하자 순간, '성인오락실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틈탔다.
'안 돼! 당회장님께 기도까지 받았는데 그럴 수는 없어. 아주 끊어 버려야 해.'
"오늘 오전 11시경, 광주광역시 금호동 성인오락실에 화재가 발생해 손님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바로 화재가 난 곳은 내가 늘 다니던 단골 오락실이었고, 바로 그날이 가고 싶은 충동을 이긴 날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다는 확신으로 오니 내게는 믿음이 되었고, 나는 하나님 사랑에 감사했다.
"아빠! 입에서 담배 냄새 안 나니까 너무 좋아!"
내가 술, 담배를 끊자 예전에는 내 옆에 가까이 오지 않던 아들 동선이가 요즘에는 자꾸 내 품에 와 안긴다. 나 때문에 늘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온 아내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 나를 업고 다니고 싶다는 아내, 얼마나 좋으면 그런 말을 다할까. 그동안 나로 인해 고생한 가족에게 기쁨과 행복만 안겨주고 싶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당회장님의 음성전화사서함 3분 설교를 들은 뒤 환자기도를 받는다. 매일 저녁, 나와 아내, 아들 세 식구가 함께 다니엘 철야 기도회에 가는 것이 내 삶의 낙이다. 토요일이면 성전을 청소하며 새사람이 된 기쁨을 만끽한다.
13년 된 공황장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치료됐고 대인공포증도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간증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한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드린다. 할렐루야!